② 그날 밤
2024년 12월 3일 22시 27분부터 이튿날 새벽 1시 2분까지, 155분 사이에 비상계엄은 선포되고, 국회는 봉쇄됐다가 스스로 문을 열었고, 해제 요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헌법재판소 2024헌나8 결정문은 이 155분을 시각 단위로 재구성해 인정 사실로 남겼다. 이 챕터는 그 기록을 따라간다.
계엄 선포와 첫 움직임 (22:27~23:23)
대통령 윤석열은 22시 27분경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1203-ev-001). 이보다 앞선 19시 20분경, 대통령은 경찰청장 조지호와 서울경찰청장 김봉식을 안전가옥 으로 불러 그날 밤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며 “경찰이 국회 통제도 잘 해달라"고 지시했고, 동석한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군의 출동 시각· 장소가 적힌 문서를 건넸다(1203-ev-016). 계엄 선포 직후인 22시 30분경,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 10여 명이 과천 중앙선거 관리위원회 청사에 진입해 야간 당직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전산 시스템을 촬영했다(1203-ev-010). 경찰은 22시 48분 부터 국회 담장 주변에 약 300명을 배치해 국회 출입을 전면 차단했다 (1203-ev-016). 계엄사령관 박안수는 23시 17분경 포고령 제1호에 서명하고 23시 23분경 이를 발령했다 — 국회·지방의회· 정당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었다(1203-ev-003).
국회 진입과 위치 확인 시도 (23:37~00:47)
포고령이 확인되자 23시 37분경부터 국회 출입은 재차 전면 차단됐고, 이 통제는 다음날 새벽 1시 45분경까지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경찰 약 1,700명이 동원됐다(1203-ev-016). 계엄군도 움직였다. 23시 48분경부터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단 97명, 제1공수여단 약 170명, 수도방위사령부 약 210명이 국회로 출동해 경내 진입을 시작했다(1203-ev-004).
같은 밤,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에게 전화해 “포고령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이라며 국회의장·여야 대표·전 대법원장·전 대법관 등 14명의 명단을 전달하고 위치를 파악해 두라고 지시했다. 여인형은 경찰청장 조지호에게 위치 확인을 요청했으나 조지호와 국정원 1차장 홍장원은 협조하지 않았고, 실제 위치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1203-ev-015, 1203-ev-011).
00시 30분경 대통령은 육군특수전사령관 곽종근에게 전화해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 곽종근은 제707특수임무단장 김현태에게 이행 방법을 논의했다(1203-ev-023). 00시 33분경 707특수임무단 16명이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진입했으나, 국회 직원· 보좌관들이 집기류와 소화기로 막아섰다. 본회의장까지 들어간 병력은 없었다(1203-ev-005). 00시 40분경에는 별도의 지휘계통에서도 같은 취지의 지시가 내려갔다 —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가 제1경비단장 조성현에게 “본관 내부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조성현은 이 지시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해 병력을 사람 없는 지역에 대기시키고 후속 부대는 서강대교를 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다 (1203-ev-017). 이렇게 계엄 선포 직후부터 대통령의 “끌어내라” 지시는 특수전사령부(곽종근·김현태)와 수도방위사령부 (이진우·조성현)라는 서로 다른 두 지휘계통을 통해 각각 전달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국회의장 우원식은 00시 47분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다(1203-ev-006).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과 무산된 계획 (01:02~04:29)
01시 2분경, 국회는 박찬대 의원 등 170인이 발의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1203-ev-007).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판시했다.
[탄핵소추안 측 서술 — 결정문에서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음] 탄핵 소추안 원문에 따르면, 이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여당인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경호는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가지 못하도록 국회의사당 밖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장소를 수차례 옮기며 당사에 남아있도록 종용했다고 서술돼 있다(1203-ev-024). 같은 원문에 따르면, 계엄군은 체포될 인사들을 수감할 장소를 물색해 서울동부구치소에 수용시설을 마련하려 했고, 지방에 주둔 중이던 7공수여단·13공수여단도 서울로 추가 투입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 준비·계획은 헌재 결정문의 인정 사실에는 포함돼 있지 않으며, 계엄이 해제되면서 실행에 이르지 않았다(1203-ev-025).
대통령은 04시 20분경 국회의 해제 요구에 따라 비상계엄을 해제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1203-ev-008), 국무회의는 04시 29분경 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 22시 27분경 선포된 비상계엄은 이로써 약 6시간여 만에 해제됐다(1203-ev-009).
챕터를 나가며
같은 밤,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두 갈래로 나뉘어 전달됐다 — 한쪽(곽종근·김현태)은 임무 수행 방법을 논의하다 결의안 가결로 철수했고, 다른 한쪽(이진우·조성현)은 조성현의 판단으로 사실상 처음부터 이행되지 않았다. 국회 담장 밖에서는 경찰 통제를 뚫으려는 시민과 국회의원들의 저항이 있었고, 국회 안에서는 190명 전원의 찬성으로 해제 요구가 가결됐다. 다음 챕터 「겨울의 광장」은 이날 밤 국회 앞에 모였던 시민들의 저항 장면에서 시작해, 탄핵 정국이 전개되는 12월 4일부터 14일까지를 다룬다.
이 챕터의 이벤트
- 비상계엄 선포 결정적 순간
- 계엄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진입
- 계엄사령관, 포고령 제1호 발령
- 계엄군, 국회 경내 진입 시작
- 주요 인사 체포 목적 위치 확인 지시에 관여
- 주요 정치인·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결정적 순간
- 경찰 동원 국회 출입 통제 결정적 순간
- 국회의원 강제 배제 지시 — 특수전사령부 계통(곽종근·김현태) 결정적 순간
- 계엄군(제707특수임무단), 국회 본관 진입 결정적 순간
- 국회의원 강제 배제("끌어내라") 지시 결정적 순간
- 국회 본회의 개의
-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결정적 순간
- 대통령, 계엄 해제 담화 발표
- 국무회의, 계엄 해제안 의결
-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계엄해제 결의안 표결 방해 시도(탄핵소추안 서술)
- 체포 대상자 수용시설 준비 및 7·13공수여단 서울 추가 투입 계획(탄핵소추안 서술)
이력
인용
베리타임(Veritime), 「12·3 내란 사건」 컬렉션, 「② 그날 밤」 (1203-narrative-02). https://veritime.org/c/1203/story/2/